흔하지만 고개 숙여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자줏빛 꽃, 제비꽃은 누가 보지 않아도 봄이 되면 발 밑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봄꽃입니다. '제비꽃'이라는 제목으로 된 시들을 모아봤습니다.
* 제비꽃- 조병화 / 제비꽃 - 임재화 / 제비꽃- 오태인 /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봄의 꽃 제비꽃 제목의 시 모음
제비꽃 - 조병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망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제비꽃 - 임재화
산비탈 양 짓 녘에서
외롭게 피어있는 제비꽃
어느 임의 넋일는지요?
어젯밤 봄비 내린 뒤
밤새 울던 눈물 자국에
슬픈 미소 가득합니다.
저만치 연약한 제비꽃
조용히 피어있는 모습
너무나 외로워 보여서
지나던 어느 길손이
차마 무심한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제비꽃 - 오태인
허리를 굽혀야
눈 맞출 수 있는 꽃
무릎을 꿇어야
손잡을 수 있는 꽃
허리를 굽혀도
무릎을 꿇어도
그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손 한 번 내밀지 않는
제비꽃
같은 아이들
같은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거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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