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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날

한강 시인 겨울 시 모음 12월 이야기, 서울의 겨울 12, 거울 저편의 겨울

by 쉼4S 2024. 12. 16.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시인의 시중에서 겨울과 관련된 시 4편입니다.

 

 

한강 시인 겨울 시 모음 12월 이야기, 서울의 겨울 12, 거울 저편의 겨울

 

 

★ 12월 이야기 ★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십이월의 사랑 노래

 

서늘한 눈꽃송이 내 이마에 내려앉네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먼 길을 헤매어야 하는지

서늘한 손길처럼 내 이마에 눈꽃송이

 

모든 것이 사라져도 흘러가고 흩어져도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기억들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순간들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

 

 

 

 

★ 서울의 겨울 12 ★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 거울 저편의 겨울 2 ★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어떤 꿈은 양심처럼 

무슨 숙제처럼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빛을 

던진다면

 

빛은

공 같은 걸까

 

어디로 팔을 뻗어

어떻게 던질까

 

얼마나 멀게, 또는 가깝게

 

숙제를 풀지 못하고 몇 해가 갔다

때로 

두 손으로 간신히 그러쥐어 모은

빛의 공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따뜻했는지도 모르지만

차갑거나

투명했는지도 모르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거나

하얗게 증발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

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

거울 밖 검푸른 자정을 기억하듯

 

그 꿈을 기억한다

 

 

노을지는-겨울-강
겨울

 

 

★ 거울 저편의 겨울 8 ★

 

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눈먼 남자 둘이서

앞뒤로 나란히

구두와 지팡이의 리듬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가 

더듬더듬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의 등을 

보호하듯 팔로 감싸며 따라 들어갔다

 

미소 띤 얼굴로

유리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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