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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날

조병화 시 모음 (곁에 없어도 / 나무의 철학 / 벗 / 사랑은 / 초상)

by 쉼4S 2023. 2. 15.

시인 조병화님의 시 모음입니다. 

●  곁에 없어도

● 나무의 철학

● 벗

● 사랑은 

● 초상

 

 

 

 

조병화 시 모음 (곁에 없어도 / 나무의 철학 / 벗 / 사랑은 / 초상)

 

 

곁에 없어도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나무의 철학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쉬임 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등불이다

그 휴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먼 내일에의 여행

그 저린 뜨거운 눈물이다

그 손짓이다

 

오늘 이 아타미 해변 

태양의 화석처럼

우리들 모여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사랑은

 

사랑은 아름다운 구름이며

보이지 않는 바람

인간이 사는 곳에서 돈다

 

사랑은 소리나지 않는 모습이며

보이지 않는 오열

떨어져 있는 곳에서 돈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마음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는 목숨

 

사랑은 닿지 않는 구름이며

머물지 않는 바람

차지 않는 혼자속에서 돈다

 

 

나무
조병화 시 모음 (곁에 없어도 / 나무의 철학 / 벗 / 사랑은 / 초상)

 

 

초상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어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 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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